입이 떡, 심장이 벌떡 / 이 춤을 보았는가
작성자
admin
작성일
2023-10-25 20:57
조회
725
입이 떡, 심장이 벌떡 / 이 춤을 보았는가
글쓴이 / 고양시민 강건
1. 입이 떡 벌어지고, 심장이 벌떡 뛴다.
나는 떡 놀랐고, 벌떡 기립했다.
공연장 다니며 기립박수 쳐본 게 손에 꼽는다.
내가 직관한 공연들이 후져서가 아니라,
내 감각이 무뎌진 탓일 텐데,
오늘, 기립박수 쳤다.
2. 제8회 고양국제무용제.
어느덧 여덟 번째인데, 찾는 관객이 많지는 않다.
막공을 갔다.
다섯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이현준씨 출연.
그리고 김운선님의 살풀이춤.
두 작품만 잘 감상해도 좋겠거니 싶었다.
이런이런, 아주 큰 착각이었다.
물론, 다른 작품들도 다 좋았지만,
마지막 춤에서 나는 경악했다.
3. 나는 춤이 좋다.
눈밭을 뛰어다니며 저절로 춤추는 아해들,
공원에서 BTS 노래를 폰으로 틀고 춤추는 청춘들,
생애의 ‘바로 지금’을 찬미하는 이 몸짓들이 좋다.
비록 나는 일곱 살 때 개다리춤 춰보고 춤과 담벼락을 쌓았지만,
춤추는 자들의 얼굴과 다리에 맺히는 땀을 추앙한다.
어떤 이들은 중고삐리 때 포크댄스를 배웠다고 하는데,
나는 왜 교련복 입고 고무수류탄이나 던져야 했을까.
내 생애에 두고두고 통탄할 일이다.
(김한결과 이현준. 이현준씨가 안무하고 춤을 추었다. 이제 이현준씨를 안무가로 생각하게 되었다.)
4. 고양국제무용제의 폐막작.
‘시나브로가슴에’ 무용단의 작품 <ZERO>
경이롭고 경이로웠다.
입이 떡, 심장이 벌떡.
기립박수 쳤다. 아주 흔쾌히, 열렬히.
남/녀 춤꾼 6명이 절대자유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이 작품에 대해, 평론가나 관객들이 어떤 감상/평을 하는지는 전혀 모르겠고,
남의 이야기에 관심도 없고, 내 알 바도 아니다.
그저 내 눈과 감각에 의지해 두어 마디 남기고 싶다.
5. 며칠 전, 때마침 스티브 라이히의 <Runner>, 신보를 들었다.
라이히를 딴에는 열심히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라이히가 2016년에 작곡했다는 이 곡을 처음 들었다.
혹시, 다른 레코딩이 뭐가 있는지 아시는 분께 귀띔 부탁 드린다.
역시, 내가 뭘 좀 알고 있구나,
라고 잠시라도 생각하는 건 죄다 착각이고 오만이다.
알긴 개뿔, 안다고 느끼는 순간이 가장 모르는 순간이다.
그리고, 안다는 것, 그 자체가 허상이다.
6. 자, 다시, 시나브로가슴에 무용단의 <제로>
이 팀도, 이 작품도 금시초문이다.
내가 보기에 이 작품, 이 춤은 몸의 미니멀리즘이다.
화려함을 모두 제거하고, 원초적 동작의 무한 반복을 통해,
극한의 영토에 남겨지는 인간의 본질에 관한 탐구다.
6명의 춤꾼이 30여 분간 뛴다.
그들은 관객들에게 정면이 아니라 등을 보이고 있다.
두 팔을 앞뒤로 흔들며, 제자리 뜀뛰기를 한다.
계속, 계속, 그리고 또 계속.
라이히의 ‘러너’가 오버랩되며,
러너 6명의 등에 점차 땀이 맺힌다.
나는 정말 기절할 거 같았다.
기절하기는 쪽팔려서 비명을 질렀다.
(<시나브로가슴에> 6인의 춤꾼. 시나브로 아니 한순간에 내 가슴을 습격했다.)
7. 집에 와서 뒤져보니, 유튭에 이 작품이 올라와 있다.
영상을 다시 보았다.
이 춤을 보신 적 없는 분들이라면 추천한다.
다만, 이거야말로 직관하지 않으면 경악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기회 닿으면, 한 번 아니 두세 번 더 재관람하고 싶다.
https://youtu.be/CJ13Z0MuIrk
8. 내가 자주 지껄이는바,
생애의 핵심은 특출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되풀이됨에 있다.
<제로>가 보여준, 미련하고 의미 없는 되풀이.
자유는 그 끝 어딘가에 있다.
'앎' 이전에 '몸'이 있다.
개개인의 몸짓 이후에 모두의 몸짓이 성립된다.
‘나’의 목소리를 음소거시키고,
‘우리’의 스피커만 증폭시키려는 세상은 옳지 못하다.
이른바 공동체 혹은 국가의 이익이라 칭하는 것들이 개개인의 행복에 앞서 주장될 때,
‘나’의 몸은 돼지‘우리’에 갇힐 것이다.
자유는 오로지 나로부터 시작하고 끝나는 가치다